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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의 각장별 주제 연구

김성훈 목사(대전 은혜의복음교회)

룻기 1장: 절망에서 시작된 믿음

룻은 ‘우정’ 또는 ‘초장’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룻기는 사사 시대 말, 다윗 왕조의 기초를 놓습니다. 여인 룻은 이방 과부였습니다. 룻기는 믿음이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입니다. 룻은 그리스도 혈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불행한 룻이 유력자 보아스를 만납니다. 이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만남과 같습니다. 둘은 혼인으로 하나 되어 영광이 됩니다. 사사 시대는 각자 소견대로 살아 저주받았습니다. 흉년이 왔습니다.

엘리멜렉 가족은 약속의 땅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남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룻기는 죽음으로 시작해 생명으로 끝납니다. 모든 것을 잃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신앙은 죽음을 배경으로 합니다. 죽음은 하나님을 찾게 합니다. 생명을 향한 소망은 영생 경험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육신이 머무는 ‘있던 곳’을 떠나야 보아스를 만납니다. 세상은 인간 정욕의 투영입니다. 인간 중심의 신은 욕망의 투사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참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가인의 제물처럼 땅의 것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창세기 4:3)”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하나님은 예수님만 받으십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그 믿음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때로 선한 마음을 거절하십니다. 믿음만 남기려 하십니다. 나오미의 거절에 오르바는 떠났습니다. 룻만 남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람이 참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망 없는 자는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외에 길은 없습니다. 이 길을 얻을 때 하나님을 상으로 받습니다. ‘다바크’는 버림받아도 따르겠다는 룻의 마음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을 받았습니다. 신앙 가정은 부모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가정에 하나님이 세워짐이 가장 큰 복입니다. 룻의 마음이 하나님께 옮겨지자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나오미는 지혜로 룻을 인도합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씁니다. ‘마라’는 쓰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의 쓴맛은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은혜입니다. 쓴 물이 십자가로 단물 되듯, 저주받은 인생이 복되게 변합니다. 비워진 후에야 내면을 만납니다. 망한 자가 될 때 하나님만 남습니다. 사람에게 소망 두는 것이 저주입니다. 낮아지고 비워지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돌이킨 자를 위해 “보리 추수”를 준비하십니다. 모든 것을 잃게 하심은 더 좋은 것을 주려 하심입니다. 룻을 위해 보아스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비워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룻기 2장: 은혜를 구하는 마음에 임한 섭리

룻의 마음에 은혜를 입기 원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율법은 과부와 고아의 이삭 줍기를 허락했습니다. 이방 여인 룻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삭 줍기에도 큰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룻은 하나님의 인도 없이는 살 수 없는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룻은 식량을 구하러 나섰습니다.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습니다. ‘우연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으면 섭리를 누립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애가 일정하다고 노래했습니다.

룻의 마음은 가난했습니다.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이 이를 반영합니다. 모압 여인으로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단 사이에 머물고자 했습니다. 소망 없는 자였습니다. 버려지고 능력 없는 여인이었으나 보아스의 눈에 들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내 딸아” 불렀습니다. 그의 밭에 머물라 권면했습니다. 그녀를 위해 많은 이삭을 주울 길을 열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은혜를 구했습니다. 이 은혜는 상대방의 깊고 순전한 사랑입니다. 보아스는 이미 룻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모든 형편을 아십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책임을 요구했고 보아스는 수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보호받으러 온 자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피난처입니다.

보아스와 룻이 함께 식사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상에 동참하는 성도의 식탁을 보여줍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와 그의 밭에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성령처럼 나오미는 성도를 그리스도와 그의 마음에 머물도록 이끕니다. 보아스의 사람들을 통해 룻은 보호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부리는 천사들을 통해 성도는 보호됩니다.

룻기 3장: 안식을 향한 인도와 순종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안식할 곳을 찾아주고자 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지혜로 룻을 만났고 복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나오미에게 룻은 “나의 딸”이 되었습니다. 나오미의 마음에는 룻을 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법궤가 앞서 갔듯, 하나님은 우리의 안식을 위해 먼저 일하십니다.

룻은 스스로 안식할 곳을 찾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를 통해 안식을 누렸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의 발치 이불을 들추라고 지시했습니다. ‘발’은 때로 남성의 은밀한 부분을 은유합니다. 룻이 보아스의 몸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나오미는 룻의 장래를 위해 세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룻은 그 계획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한 사람을 향한 생각이 이토록 구체적이듯,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 또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생각이 보배롭고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 (시편 139:17-18)

보아스는 룻에게 “인애”를 보았습니다. ‘헤세드’는 신의 사랑이 가득한 가족에 대한 충성된 사랑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현숙한 여인”이라 불렀습니다. 현숙한 여인에게 남편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가족을 돌보고 남편을 존귀하게 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동반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남편을 섬깁니다. 룻은 현숙한 여인의 본보기입니다.

현숙한 룻의 가치는 기업 무를 책임을 다하는 보아스를 통해 드러납니다. 남편 없는 현숙함은 무용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오늘” 이 일이 성취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 우리는 안식을 누립니다.

룻기 4장: 헤세드로 완성된 구속과 생명

보아스는 친족에게 기업 무를 일을 드러냈습니다. 먼저 유익한 땅에 대한 특권을 알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드러내고 처리했습니다. 이방 여인 룻을 취해야 하는 부담도 밝혔습니다. 기업 무를 자는 “구원자”란 의미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족은 땅에는 관심을 보였으나, 룻을 아내로 맞아야 함을 알자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경제적 손실과 이방 여인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포기는 보아스의 의로운 결단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는 자는 신을 벗기우고 침 뱉음을 당했습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라합이었습니다. 보아스가 이방 혈통을 일부 이어받아 룻에게 더 공감했을 수 있습니다. 그의 결정은 율법을 넘는 헤세드와 순종을 보여줍니다. 라합과 룻 모두 이방 출신이었으나 진실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신앙은 혈통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룻기는 율법의 문자보다 그 안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합니다. 가까운 친족은 현실적 이익을 택했습니다. 보아스는 헤세드를 실천하며 율법의 외면이 아니라 그 정신을 실천했습니다.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신앙은 참 은혜를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얻은 일에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과 사도들이 증인입니다. 우리 믿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하늘에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백성들은 보아스와 룻을 축복했습니다. 이방인과 히브리인이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세울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과부 룻은 담대히 보아스에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오미는 룻 하나를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만 있으면 됩니다. 룻으로 나오미는 모든 것을 다시 얻었습니다. 회복은 오직 복음을 통해 유효하고 영원합니다. 복음만이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입니다. 죽음으로 시작한 룻기가 생명의 “낳음”, 다윗의 탄생으로 종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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