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휘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의 회심 체험
액트성경연구원 편집부 엮음
– 율법의 밤을 지나 은혜의 새벽으로 –
어둠이 짙게 깔린 시대
18세기 초 영국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깊은 침체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서민들의 삶은 소위 ‘진 광풍(Gin Craze)’이라 불리는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물보다 싼 진(Gin)이 거리에 넘쳐났고, 런던에서는 “술에 취하는 데 1페니, 만취하는 데 2페니, 잠자리는 공짜”라는 문구가 나붙을 정도로 사회는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지성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성의 시대(Age of Reason)’가 도래하며, 기독교 신앙은 차가운 이신론(Deism)의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그저 세상을 만든 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계공’ 정도로 여기는 풍조 속에서, 강단에서는 생명력 있는 복음 대신 도덕적인 훈계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영적인 겨울을 끝내기 위해 한 청년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옥스퍼드의 고행자, 율법의 벽에 부딪히다
1732년, 글로스터의 술집 아들로 태어난 조지 휘필드는 옥스퍼드 펨브룩 칼리지에 ‘근로 장학생(Servitor)’으로 입학했습니다. 귀족 학생들의 시중을 들며 학비를 면제받는 낮은 신분이었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남다른 영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곧 찰스 웨슬리의 초청으로 존 웨슬리가 이끄는 ‘홀리 클럽(Holy Club)’에 합류했습니다. 규칙적인 금식과 기도, 구제 활동 때문에 ‘규칙쟁이(Methodist)’라 불리던 이 모임에서 휘필드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는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금식했고, 설탕 없는 차와 거친 빵만으로 끼니를 때웠으며,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숲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손이 동상으로 검게 변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를 학대하며 구원에 이르고자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율법의 행위에 매달릴수록, 마음의 평안은커녕 죄책감의 무게만 더해질 뿐이었습니다.
한 권의 책, 그리고 지적인 각성
철저한 금욕 생활로 지쳐가던 휘필드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친구 찰스 웨슬리가 건넨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의 책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이었습니다.
이 책은 휘필드가 가지고 있던 종교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스쿠걸은 책에서 “참된 종교는 외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하나님의 연합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휘필드는 그때까지 구원이란 ‘내가 무엇을 하는가(Doing)’에 달렸다고 믿었으나, 이 책을 통해 구원이란 ‘새로운 탄생(Being)’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게 되었지만, 아직 가슴으로 체험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목마르다!”, 십자가 앞에서의 항복
1735년 사순절, 휘필드의 고행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는 영적인 싸움과 육체적인 학대로 인해 결국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왕진을 올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그는 약 7주간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병상에서의 시간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하신 ‘거룩한 방문’의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휘필드는 십자가 위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심한 갈증을 느끼던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외치신 “내가 목마르다(I thirst)”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적 목마름을 그 말씀에 투영하며 침대 위로 몸을 던져 절규했습니다. “내가 목마릅니다! 내가 목마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갈증의 호소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의와 노력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구하는 항복 선언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이 벗겨졌습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 그의 영혼을 채웠습니다. 율법의 밤이 지나고, 마침내 은혜의 새벽이 밝아온 것입니다.
거룩한 광기, 세상을 깨우다
회심의 불꽃은 휘필드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았습니다. 1736년, 21세의 나이로 성직자가 된 그는 고향 글로스터의 성 마리아 드 크립트 교회에서 첫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그의 설교는 이전의 도덕적 훈화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의 설교는 강력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충격에 빠졌으며, 일부는 그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다”며 주교에게 항의하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15명의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듣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벤슨 주교는 오히려 “그 광기가 다음 주일까지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의 영적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조지 휘필드가 옥스퍼드의 작은 기숙사 방에서 경험한 이 회심 사건은, 훗날 영국과 미국을 뒤흔든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한 청년의 실패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Dallimore, Arnold A. George Whitefield: The Life and Times of the Great Evangelist of the 18th-Century Revival. Vol. 1.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0.
Kidd, Thomas S. George Whitefield: America’s Spiritual Founding Fath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4.
Scougal, Henry.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Wheaton, IL: Crossway, 2022.
Whitefield, George. George Whitefield’s Journals. London: The Banner of Truth Trust, 1960.